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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펑펑 내뿜던 산업계, 단꿈에서 깨어날 때 - 탄소국경세 도입 본격화로 발등에 불, 애플도 2030년 탄소중립 선언 - 탄소세 도입 주장 탄력··· “모든 경제 주체가 탄소 감축에 참여할 것”
  • 기사등록 2021-07-11 17: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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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다. 산업경쟁력을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에 극렬하게 저항했던 산업계는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50년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 세계 GDP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국가들이 탄소중립에 동참하는 가운데 세계 11위 탄소배출국인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EU처럼 야심찬 탄소저감 목표를 세우기 어렵다. 탄소중립에 매우 불리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대국이라는 독일보다 더욱 제조업에 치중한 탄소 다배출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을 해야 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시점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이사장 정해구)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장 윤제용)은 30일 ‘2050 탄소중립 정책 포럼: 공감·참여·실천을 통한 탄소중립사회로의 대전환’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연구회 소속 기관들이 협력해 탄소중립 관련 당면 과제들에 대한 단기적·우선적 해결책을 고민하고, 정부·기업·시민들의 탄소중립을 위한 역할 구체화를 논의하고자 마련했다.

2020년 탄소 1억톤 초과 배출

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위원장은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했다. 윤순진 위원장은 “누구도 변화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돼서는 안 된다. 파리협정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은 핵심가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윤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24.3% 저감 목표는 지나치게 낮다. 이를 전 세계적으로 환산하면 3~4℃ 이상 온도 상승이 전망될 수치”라며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한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탄소배출 저감 실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음에도 우리나라는 본래 저감 목표에 비해 1억톤 이상 초과 배출했다.

윤 위원장은 탄소중립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관련 법령 제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탄소중립위원회는 관련 법령 부재로 여전히 대통령령으로 만든 조직으로 남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 RE100 선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이창훈 그린뉴딜연구단장은 “2050년 탄소중립을 할 것인가는 이미 관심 사항이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 단장은 “EU를 시작으로 국경세를 통해 탄소를 줄이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패널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애플의 경우 203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이에 따라 애플에 반도체, 패널, 배터리 등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수 포함됐다.

Google, BMW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RE100(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부품 공급업체들도 재생에너지 수급에 유리한 미국, EU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소니도 일본 정부에 ‘재생에너지 수급에 불리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경고할 정도다.

산업연구원 주현 원장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어느 부분의 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탄소중립의 짐은 국민이 나눠져야 하고, 특정 부분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의 문제는 결국 에너지 전환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배출하는 탄소 7.3억톤 가운데 1/3이 산업 분야에서 나오는데, 전기를 포함하면 절반에 달한다.

주현 원장은 “탄소국경세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산업계에서도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경로가 너무 험하고 앞이 안 보인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가령 철강산업의 경우 철(Fe)에 붙은 산소(O)를 탄소(C)를 결합시켜 제거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한다.

따라서 철강산업의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산업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주 원장은 “철강산업의 경우 소유하고 있던 토지 빼고는 공장과 설비를 모두 바꿔야 한다”며 “철강공장이나 시멘트공장이 아예 없어지거나 산업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촌의 에너지 식민화 우려

농촌경제연구원 김홍상 원장은 농촌이 도시 난개발의 식민지화 되는 현상을 경고했다.

김 원장은 “토지를 에너지 전환의 대상으로 보면서 도시 난개발의 식민지로 인식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영국의 울타리치기 운동처럼 농민을 쫓아내고 그곳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농업 분야의 탄소배출도 있지만 탄소흡수 기능도 있다. 효율성 위주의 농업 경영이 아닌 지속가능 개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농촌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연구원 황덕순 원장은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황 원장은 “탄소중립은 매우 장기적인 기술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기존 전망으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고용이 유지되더라도 나라마다, 산업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석탄발전, 자동차, 철강, 화학 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특정지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해관계자 참여 속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는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는 데 훌륭한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다”며 “수도권매립지, 원전폐기물 처리 등을 보면 잘 조율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부 부처 내 밥그릇 싸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부 부처들은 이름만 탄소중립을 내건 예산 확보 전쟁에 돌입했다.

황 원장은 “에너지 전환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부처들이 관련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협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과제를 갖고 있다. 정부 내 잘 조율된 협력체계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모두에게 공평한 탄소세 도입 필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김재진 원장은 탄소세 도입을 주장했다.

김 원장은 “수송 부문은 대략 96%의 온실가스 외부비용을 감당하고 있지만 전력 및 사회적 비용은 2%, 주거 및 상업은 16%만 감당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탄소중립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기업들에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탄소세 도입은 1990년대 북유럽 국가들부터 시작됐고, 일본에서도 2012년 시작돼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섰지만 한국은 이제야 도입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목표관리제, 배출권거래제 등을 도입했지만 산업계 압력에 밀려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탄소세 도입 주장이 나왔지만 산업경쟁력 우선 논리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원장도 탄소세 도입에 찬성했다. 유 원장은 “탄소중립은 분야별 사회적 합의와 이해관계 조정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그러나 미루면 미룰수록 지연비용이 체증한다”며 “부담이 되더라도 초기에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압도적인 경제적인 수단은 역시 탄소세”라고 말했다.

그는 “탄소세를 도입하면 모든 경제주체가 탄소감축에 참여하게 되고 가장 효율적인 감축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도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수입이 생기고 이를 가지고 공정한 전환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걸 뒤로 미루면서 잘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실생활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면 당장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 뻔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탄소중립을 이야기 하면서도 동시에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국민적인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 좌장을 맡은 KEI 윤제용 원장은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시스템이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250년 동안 유지된 시스템을 30년 만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연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탄소중립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 산업, 국가가 있는 반면, 손해 보는 사람, 산업, 노동자가 있을 것이다. 소통과 비전 공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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